우리는 늘 수세였다. 적이 국토를 침공할 때까지 기다리다 마침내 발을 들여야 반격을 시작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수많은 전쟁이 그랬다. 피는 언제나 이 땅에 뿌려졌고, 가까스로 적을 몰아낸 것을 ‘승리’라 치부했다.
그랬던 것이 바뀌었다.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이 우리 상선 삼호주얼리호와 선원을 납치하자 해군 청해부대 최영함이 주저 없이 출격했다. 단 한 명 사망자 없는 완벽한 구조작전에 세계가 놀랐다. 4월 리비아 반정부 소요사태 때도 그랬다. 서둘러 도착한 최영함이 교민을 피신시키자 다른 나라 국민은 부러운 듯 쳐다봤다.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안심하십시오”라는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많은 국민이 ‘이제는 우리가 위기에 처하면 나라가 지켜주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
정부와 군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심어준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역인 해군 청해부대 최영함장 조용주 대령(47·해사 40기)을 9일 진해 최영함 함상에서 만났다. 그동안 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 언론 인터뷰를 극도 자제해온 최 함장이 처음으로 단독인터뷰에 응했다. 조 함장은 짧은 휴가를 보내고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 아덴만 여명 작전의 여운이 아직도 국민 가슴에 남아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의 구출작전과 비교해도 굉장히 뛰어난 성과다. 완벽한 작전의 비결은 무엇이었나.
“대부분의 나라는 선박과 선원이 동시에 해적에 피랍된면 구출작전을 꺼린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과 군 지휘부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려줬다. 우리 대원들이 실제상황에서 잘 싸울까 염려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휘관의 지시가 떨어지자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도 두려움 없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해군작전사령부는 현지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세세하게 체크해 작전 계획을 세워주었다.”
-1차 구출작전 때 대원 3명이 다쳤는데. 어떤 심정이었나.
“가슴이 철렁했다. 지휘관으로 가장 힘든 부분이 부하를 위험으로 내몰 때다. 그동안 UDT/SEAL 대원들만 보면 마음이 아팠다. 상황이 터지면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곳에 가서 죽도록 싸우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그들과 체조하고 땀 흘리며 동고동락하려 노력했다. 해적의 습격에 당황했다. 우리가 공격하면 해적이 바로 백기 투항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들을 생계형 해적으로 생각했으나 실제 교전 결과 전투요원 이상의 능력이 확인됐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다. 1차 작전 때 해적의 전투 능력과 제반 정보를 충분히 확인해 2차 작전에서 성공했다.”
-1차 작전 실패에 따른 부담도 컷을 것 같다. 2차 작전에 돌입하기 전날 밤 어떤 생각을 했나.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2차 작전 전날은 한숨도 못 잤다. 작전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일념이었다. 지휘관도 사람이어서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지휘관이 확신을 갖고 작전을 구사해야 대원들이 확신을 갖고 따른다. 그래서 작전이 성공할 것을 믿고 대원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웠다.”
-작전 투입되는 UDT/SEAL 대원에게 마지막 순간 어떤 말을 해줬나.
UDT 대원들의 작전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조 함장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당시를 회상하는 듯했다. 조 함장은 “그때가 다시 떠오른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UDT/SEAL 대원에겐 희생을 감내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들에게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우리가 곁에 같이 있다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작전에 성공해 해적이 다시는 대한민군 선박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해주라고 당부했다.”
-작전 이후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상태는 어땠나?
“석 선장은 대단한 분이다. 총상을 입은 뒤에도 담담했다. 심지어 웃으며 ‘많이 아파요’라고 했다. 선 정장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해적 소탕 작전을 중단하고 석 선장을 구명보트로 먼저 후송했다. 그런 다음 미군 헬기 지원을 받아 생명을 구했다.”
-같이 배를 지휘하는 입장에서 피랍 당시 석 선장의 대처를 어떻게 평가하나.
“선 전장을 존경한다.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목숨을 걸고 했다. 기름에 물을 붓는 등 선장이 한 이상한 행동을 해적이 모를 수가 없다. 해적들이 ‘소말리아에 도착하면 석 선장은 꼭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위협에 굴하지 않고 해적 피랍 기동을 저지하고 해군 작전을 도왔다. 진정한 영웅이다.”
-체포된 해적을 직접 보니 어땠나?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순식간에 제압돼 그런 것 같았다. 어디서 총알이 오는지도 모르고 당했으니 그럴 만 했다.”
-한국에서 재판받는 해적 아라이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도 있다. 소말리아 국민 대부분이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물과 전기도 귀하다.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다. 해적질로 일확천금만 노린다. 우리에게 피해를 끼친 건 잘못했지만 인간적으로는 불쌍하다.”
-구출 작전 성공 이후 다른 나라 해군 반응은.
“다들 놀라워했다. 한국 해군을 얕잡아 봤는데 완전히 다시 보게 됐다. 미 해군 사령관은 구출 작전 성공 비결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중국 함대 사령관은 ‘한국이 해적퇴치를 완전하게 성공해 똑같은 상황이 중국 상선에 발생하면 우린 어떻게 하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해적을 근절할 방법은 없나.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해적은 바다를 통한 인류의 활동이 시작된 이래 계속 있었다. 소말리아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막대한 국가 재건 지원까지 했지만 여전히 내전상태로 기능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적까지 막기는 역부족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이 우리 해군에는 어떤 의미인가.
“2010년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으로 해군이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파병되자마자 한 달 만에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시켰다. 해군의 어려운 분위기를 전환하는 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날 인터뷰는 최영함 식당과 귀빈실에서 두 차례 이뤄졌다. 식당에서 승조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덴만 주역인 승조원들은 묵묵히 함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아덴만 작전때도 그랬을 터였다. 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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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함은 지금...>
9일 방문한 최영함 갑판에는 조그만 배 한 척이 하얀 밑바닥을 드러낸 채 꽁꽁 묶여 있었다.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우리 선원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해적들이 이용했던 모터보트였다. 쓸모도 없는 전리품이지만 쉽사리 버려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소말리아 파병 임부를 마치고 지난 5월27일 귀환한 최영함은 약 두 달에 걸친 선체 검사를 받았다. 장기간 파병에 따른 선체 피로와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고 무기도 점검했다. 해적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나 큰 손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덴만의 주역’인 승조원들은 25일간 휴가를 받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귀국한 지 불과 석 달도 안 됐지만 좋은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덴만 여명 작전에 참여했던 최영함 승조원 중사 5명이 그동안 결혼식을 올렸다. 이번 연말까지 3명이 더 추가로 결혼에 골인할 것으로 보인다. 최영함에는 새로운 얼굴도 합류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와 비교해서 승조원 가운데 20%이 40여명이 교체됐다.
2달간의 선체 수리·점검을 마친 최영함은 이번 주 탄약과 유류를 적재 작업에 돌입했다. 준비가 되면 향후 3주에 걸쳐 강도 높은 실전 교육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교육 훈련이 끝나면 언제든 적의 도발을 격퇴하기 위한 작전 대기상태에 들어간다.
최영함은 한국형 다목적 구축함 도입 사업인 KDX-Ⅱ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4500톤급 한국산 헬기 구축함(DDH)이다. 최영함은 충무공 이순신함급으로 방공 구축함이자 원거리 작전능력을 보유해 차세대 주력 구축함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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