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충북 제천.
제천의 깊은 산중. 지름이 약 2m 정도 되는 시커먼 동굴 입구가 하늘을 향해 떡 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 입구 언저리에 조심스럽게 발을 얹었다. 한발은 안전한 뭍 쪽에, 다른 한 발은 입구 가까이 어정쩡하게 걸치고 몸을 기울여 구멍 아래를 들여다 봤다. 깊어서인지 어두워서인지,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바람이 온몸을 한 번 감싸고 지나갔다. 마치 ‘함부로 나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는 것처럼….
<제천 박쥐동굴의 비경 (허정호 사진)>
한국동굴연구소 김련(33) 부소장과 탐사대원 최형순(강원대 동굴탐사동호회)씨의 동굴 탐사 작업에 동행했다. 호기심 반, 기대 반 따라나섰지만 막상 시커먼 내부를 들여다 보니 겁부터 났다. 수직으로 난 동굴 입구는 진흙 범벅이었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입구에서부터 자일(등산용 밧줄)을 타고 동굴 안 직벽을 20m 정도 내려가야 했다. 김 부소장은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행동은 터프했다. 180cm 정도 되는 키에 굵은 팔뚝과 가슴을 자랑했다. 시퍼렇게 턱을 덮은 수염은 모험가의 이미지를 더했다. 나이는 33세로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전문가의 풍모가 물씬 풍겼다. 김 부소장이 자일과 안전 헬멧, 무릎보호대, 장갑을 주며 말했다.
“군대에서 레펠(높은 곳에서 자일을 타고 내려가는 것) 해 보셨죠? 제가 먼저 갈 테니 따라오세요.”
‘자, 잠깐만요’라고 말할 틈도 없이 김 부소장이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이곳을 다녀갔던 듯, 그는 거침없이 내려갔다. 위쪽은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새 바닥에 도착한 김 부소장. 그제서야 위를 보며 소리쳤다.
“자! 내려오세요.”
“예.”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긴장됐다. ‘내가 인디아나 존스냐? 혼자 알아서 내려오라고?’
자일을 단단히 잡았다. 하네스 등 안전장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동굴을 향해 발과 엉덩이를 조심스레 들이밀었다. 동굴 입구는 먹이를 삼키기 직전 침이 넘치는 뱀의 목구멍처럼 미끌미끌했다. 어디선가 흘러나온 계곡물이 입구를 거쳐 동굴 속으로 계속 스며들고 있었다. 미끄러운 벽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자일에 대롱대롱 매달려 여기 부딪히고 저기 뒹군 다음에야 아래 바닥에 발이 닿았다.
죽지 않겠다고 얼마나 자일을 꽉 잡았던지 벌써 손아귀가 절이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이제 동굴 입구는 저 멀리 머리 위에 있었다. 하얗게 보이는 동굴 입구 너머로 파란 하늘과 구름 몇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꽤 들어왔구나’
먼저 들어온 김 부소장은 자일과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나는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주변 사물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머리 위에 뒤집어 쓴 헤드 랜턴을 켰지만 멀리 보이지 않았다. 김 부소장은 동굴 속살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던지, 아니면 초보 ‘탐사대원’이 귀찮았던지, 채근했다.
“자, 또 갑시다.”
“잠깐만요. 눈이 좀 적응하면 가죠.”
김 부소장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15m 깊이의 낭떠러지를 건너야 하니, 차라리 잘 안 보이는 게 나을 겁니다. 하하하.”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이날 이같은 벼랑과 절벽을 몇개나 넘어 다녔다.>
인생은 녹록하지 않은 법. 하고 싶은 건 잘 안 되고 보기 싫은 건 잘 보인다. 눈은 빠르게 어둠에 적응했고, 믿기 싫었던 절벽이 눈 앞에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굴 속 좁은 공간에 이 정도 규모의 절벽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김 부소장이 하는 대로 단애 끝자락을 잡고 디디며 조심조심 한발씩 나아갔다. 벼랑밑 깊은 곳에서 몰려온 찬바람이 힁하니 샅을 훑고 지나갈 땐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다.’ 자원해서 따라 나선 길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조심 또 조심할 뿐이었다.
박쥐동굴은 일반에 공개된 제주도 만장굴이나 단양 고수동굴 등과는 다르다. 조명이나 안전시설이 일체 없고 사람이 똑바로 서서 이동할만한 공간도 충분히 확보돼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반인들은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자칫 길을 잃거나 안전사고를 당하면 그대로 목숨까지 위험하기 십상이다.
가까스로 건너편에 도달했을 때 김 부소장은 안 보였다. 그는 이미 커다란 바위 밑으로 사라졌다. 50㎝도 안 되는 바위 틈 저편에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타고 김 부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서 기어오세요.”
<비좁은 바위 틈새를 기어서 지나가는 탐사대원.>
바위 틈을 기고 벼랑 끝에 매달리기를 몇 번이나 더 했을까. 온몸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됐다. 입구로부터 얼마나 들어왔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위쪽으로 올라온 것인지 아래쪽으로 내려온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한 시간여를 들어오자 박쥐동굴이 서서히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냈다. 불빛이 비치는 구석구석 새로운 별천지가 펼쳐졌다. 천길만길 낭떠러지가 위협하는 듯싶더니 곧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이 시원한 노래를 불렀다. 바위를 넘어가면 고운 모래밭이 펼쳐졌고, 조그만 바위 틈 뒤에는 커다란 공간이 숨어 있었다. 동굴 벽은 검은색에서 흰색, 붉은색, 황색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석회암이 물에 녹아서 만든 종유석과 종유관, 석순은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박쥐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아래 쪽에 석순이 보인다.>
“멋있죠? 동굴 마니아들 대부분은 외계에서나 봄직한 이런 비경 때문에 동굴에 미치게 되죠. 저도 대학 1년 때 여기에 반해 지금까지 이러고 있습니다.”
김 부소장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동굴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해 약 4개월을 동굴에서 보낸다. 탐사 중인 동굴 속에서 며칠씩 먹고 자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450여 개 국내외 동굴을 다녔다고 했다.
전진 또 전진. 또다시 기고 매달리기를 한 시간. 드디어 동굴 막장에 도달했다. 동굴 끝에는 반경 4∼5m의 넓은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굴탐사 동호인들의 용어로는 바로 ‘동방(洞房)’이다. 사람이 꾸부정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높이였고 바닥은 평평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시커먼 물체가 ‘철썩’ 하고 뺨을 때리고 지나갔다. 인기척에 놀란 박쥐였다. 자기 집을 침입한 불청객에게 던지는, 달갑지 않다는 인사치레였을까. 촉감은 부드러웠다. 박쥐동굴이란 이름에 걸맞잖게 이날 박쥐는 많지 않았다. 두 마리가 전부였다.
먼저 동방에 들어앉은 김 부소장이 재미난 제안을 했다. “진짜 암흑 한 번 경험해 보실래요?”하면서 모두에게 랜턴을 끄라고 했다. 랜턴이 모두 꺼지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었다. 빛이 전혀 없는 곳에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도 소용없었다. 빛도 소리도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부드러운 융단이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진정한 ‘암흑 세계’에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갇히면 누가 우릴 찾아낼 수 있을까’, ‘랜턴이 고장 나면 어떡하지’ ‘우리가 지나온 길에 돌이라도 무너져 내려 있으면 어쩌지’…. 지금 머리 위와 아래로는 산과 흙과 물이 있고, 우리는 실핏줄과도 같은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차차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빛과 소리, 외부와 완전 차단된 동굴 속은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일반에 공개된 관광 동굴에서는 받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동굴탐사대는 이런 곳에서 무엇을 조사하는 것일까. 김 부소장은 “우리는 주로 동굴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발달했는지 등을 조사해 동굴 지형도를 그립니다. 그러면 지질학자들이 이를 토대로 동굴 속 광물의 생성 원인이나 특징, 생성물, 지하수 등을 연구하죠”라고 설명했다. 동굴은 특히 지질·지구과학자들에게 중요 연구 대상이다. 동굴 생성물의 연대를 측정하고, 내외부 환경과 기후 변화 등을 분석해 지구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연구한다. 동굴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인류의 흔적은 중요한 고고학 자료가 된다. 동굴에만 사는 희귀 생물들은 난치병 치료를 위해 연구되기도 한다.
<'동굴의 꽃' 석화와 갈르와 벌레, 박쥐 등 다양한 동굴 생태계 모습들. 이날 박쥐동굴에서 찍은 것은 아니다. (석동일 사진)>
<박쥐동굴 탐사활동 사항을 기록하고 있는 김련 한국동굴연구소 부소장(오른쪽)과 최형순 대원. (허정호 사진)>
희귀한 암흑 체험을 마치고 밖으로 향했다. 들어올 때와 나올 때 동굴은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들어갈 땐 몰랐는데 나오면서 보니 동굴 곳곳에 훼손된 자국이 보였다. 떨어져 나간 종유석과 꺾인 석순 주변에는 어김없이 철삿줄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간의 ‘더러운’ 손길이 닿은 흔적이었다. 이처럼 험한 동굴 속, 이 깊은 지점까지 도굴꾼이 설친다는 게 놀라웠다.
김 부소장은 “우리나라 동굴 보호 실태는 형편없다”면서 “도굴꾼들은 전문가 못잖은 장비를 갖추고 동굴을 망쳐놓고 있으며, 일반에 개방된 관광동굴은 관람객과 인공 조형물로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술조사 단체조차도 동굴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일행이 동굴 속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는 동안에도 “뭐든 먹을 땐 한 입에 넣어 입을 꼭 다물고 드세요. 과자 부스러기 한 조각이라도 바닥에 떨어지면 동굴 오염이 시작됩니다”라고 단단히 일렀다.
이날 탐사활동은 4시간여 만에 끝났다. 다시 동굴 입구 밝은 세상에 나왔을 때 온몸은 진흙투성이였고, 팔다리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김 부소장은 그러나 또 다른 탐사를 위해 단양으로 가야 한다며 서둘러 채비를 했다. 도로공사 작업장에서 동굴이 발견됐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새로 발견된 동굴인데 다른 사람보다 먼저 들어가 봐야죠.”
김 부소장은 인사도 채 마치기 전에 바쁘게 차를 몰았다.
<동굴 탐사를 시작하기 전 기념촬영. 이 때까지는 옷의 상태가 양호했다. (허정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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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이번엔 국내편이시네용..^^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