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한국 부산.
고향 부산에서 추석 명절을 잘 지내고 다시 귀경길에 올랐다. 아내가 오후 8시40분 KTX를 예매한 덕분에 느긋했다. 게다가 좌석은 1년에 한 번 탈까말까한 특실이었다. 돈은 좀 들었지만 지긋지긋한 고속도로 정체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안했다. 아내는 네 살짜리 딸아이를 안고 있었고, 나는 양손에 부모님이 싸주신 선물을 한 보따리씩 들고 있었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부산역에도 50분 전에 미리 도착했다. 역 카페테리아에서 저녁밥까지 든든히 먹고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가서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었지만 한 5분 여유가 있었다.
<서울역에서 고향을 가려는 많은 사람들이 KTX를 타고 있다.(이종덕 사진)>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갑자기 주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 포도 주스 먹고 싶어.”
“여기는 없으니까, 저기 편의점 가서 사줄게.”
아내가 편의점에 가서 주스를 샀다. 그런데 계산대에 손님이 너무 많았다. 차례를 기다려 계산을 끝내고 서둘러 플랫폼을 향했다. 짐도 많고 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시계를 보니 1분여가 남았다. 3층에서 1층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 KTX를 타고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타지 않은 사람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곤 안심을 했다. 시계 분침도 여전히 40분에 조금 못 미쳐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플랫폼에 내려섰다. 그런데 좌우로 KTX가 두 대가 서 있었다.
“이거 뭐야? 어떤 걸 타지?”
양쪽을 번갈아 보니 모두 서울행이었다. 우리랑 같이 내려온 사람들은 왼쪽 KTX로 올라타고 있었다. 객실 옆을 보니 전광판에 ‘8시50분 발 서울행’이라고 적혀있었다.
“어? 이거 아닌데.”
반대편 ‘8시40분 발 서울행’이라고 적힌 KTX가 바로 우리가 타야할 열차였다. 아내에게 소리쳤다.
“빨리 오른쪽 거 타!”
후다닥 서둘러 뛰었지만, 막 KTX 객차문이 모두 닫힌 뒤였다. 아내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해...”
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윙∼∼’하며 기차 엔진에 전기가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KTX 몸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에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기차 객차를 따라가며 힘껏 두드렸다. 탕탕탕!!
“이 봐요. 우리 아직 안 탔다구요.”
객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플랫폼에 있던 사람들까지 우리를 쳐다봤다. 창피했지만, 그런 걸 따질 경황이 없었다. 이렇게 객차 가까이 서서 소동을 부리고 있으면 CCTV를 보고 있던 역무원이 기차를 세워 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 지하철 승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차 옆에 더 가까이 붙어서 객차를 두드렸다. 하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딸 아이가 겁이 났던지 “아빠, 저쪽으로 가”하며 기차 선로 반대 쪽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거대한 철 덩어리는 금세 가속을 붙이더니 플랫폼을 떠났다. 아내는 울상이 돼 버렸다. 특실에 앉은 편안한 귀경길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이 걱정이었다. 나는 회사 사정상 추석 연휴 마지막날부터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내는 아내대로 편의점에 들른 걸 미안해 했고, 나는 나대로 서두르지 못한 걸 미안해 했다.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내일 출근은 어떡하나. 이 시간에 고속버스가 있을까. 부모님 차라도 빌려서 서울로 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순간, 맞은 편에 서 있는 KTX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거다!’
“여보. 일단 저기라도 타. 일단 타고 승무원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서울엔 가야될 거 아니야.”
“그래도 될까.”
“안 되면 어떻게 해. 도리가 없잖아. 일단 타자.”
마침 플랫폼에서 출발을 준비하던 승무원을 붙잡고 다급하게 사정을 얘기했다. 안 된다고 하면 무작정 올라 타고 볼 생각이었다. 처음엔 난색을 표하던 승무원이 울상이 된 아내와 딸아이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출발시간 다 됐으니, 일단 타세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얼른 KTX에 올랐다. 어쨌든 서울행 기차에 탔으니, 한시름은 던 셈이었다. 기차에 올라 객차 사이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아내와 딸 아이를 앉혔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출발하자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한바탕 소동에 놀랐을 아이부터 달랬다.
“놀랐지? 이제 우리 집에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마.”
잠시후, 플랫폼에서 얘기했던 객실승무원이 우리를 찾아왔다.
“앞서 놓치신 KTX 표는 환불을 하시구요, 이 차편의 표를 새로 끊으시면 될 거 같아요. 하지만 8시40분발 KTX는 출발한 뒤 환불하는 거니까 수수료를 좀 떼야 합니다. 이 차는 잔여 좌석이 없으니까 입석으로 끊어야 하구요. 괜찮으시겠어요?”
“아, 감사합니다. 서울만 갈 수 있으면 됐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객실승무원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입석표 두 장을 들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구요, 빈 좌석이 하나 있더라구요. 사모님이랑 아기는 거기 앉으시면 될 거 같아요. 4호차 2A입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4호차 2A로 이동했다. 특실이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앉았다. 다행히도 4호차 객실 바로 바깥에 있는 간이의자도 비어 있었다. 얼른 짐을 아내가 앉은 자리 머리 위에 올린 뒤 내 좌석인 '특실옆 간이의자’를 차지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도 못가고 자리를 지켜야 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단 10분 차이가 있긴 했지만, 우리의 귀경길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지난 2004년 KTX를 처음 타고 아내와 여행했을 때.>
아내는 특실에 아이와 함께 있었고, 나는 특실이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객실문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엄마 무릎에 앉은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빠 안녕?”하며 손을 흔들어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이 그랬다. 우린 그렇게 서울로 향했다. 다음날(오늘 15일) 아침 무사히 회사에 출근했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좋은 추석날 추억을 만들어준 친절한 KTX 객실 승무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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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새내기 남편의 명절 스트레스 그 이후... 경험담
Tracked from 마구잡이 블로그 2008/09/15 18:47 삭제짧은 추석연휴이지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안절부절하면서 보낸 추석은 처음이었던거 같습니다.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명절 때면 안 싸울수가 없다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많은 걱정을 했던 터였죠. 그래서 "새내기 남편의 명절 스트레스 감당하기" 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하여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이 다음 메인에 걸리면서(?) 수많은 방문자와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의 내용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니... 어른들에게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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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하이패스 카드 손바닥에 올려놓은 에피소드 ^^;
Tracked from Virtuso~ 2008/09/15 22:25 삭제요즘 제가 아버지 차를 빌려타고 고속도로 출퇴근을 합니다. 거의 왕복 70km의 거리를 다니고 있습니다. 출퇴근 할인을 받기 위해 하이패스 카드를 하나 구입해서 사용 중에 있습니다. 20% 할인이 되더라구요.. 이번에는 명절이라 아버지께서 여동생과 시골에 갔다왔습니다. 차를 가지고요. (지금 부터 동생한테 들은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신 아버지는 운전석 햇빛가리개에 꽂혀 있는 하이패스 카드를 발견하시고는 동생에게 하이패스 카드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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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게 읽었습니다.
많이 놀랐고 당황스러우셨지요.^^
지난해 가을, 대전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에 오던 길이었는 데, 동대구역을 살짝 벗어났는 데, 승객 한 분이 당황하여 승무원을 찾더군요.
동대구역에서 하차를 해야 하는 데 잠깐 잠이 든 사이 열차는 이미 부산을 향한거지요.
부산역 도착 시간이 거의 자정에 가까웠으며, 동대구발은 새벽이라야 가능하다더라구요.
새삼 그 분이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진땀 빼셨겠네...
인생이란 그런것..ㅋㅋ
10년도 더 전에 군 복무 하던 때에 휴가복귀하는 길에 열차환승을 착각해서
헤매다가 뒤늦게 제가 타야하는 무궁화열차를 알아채고
허겁지겁 뛰어가서 막 슬금슬금 출발하기 시작하는 기차의 출입구를
제가 직접 손잡이를 열고 올라탄 기억이 -_-;;
건너편에 대기하던 다른 열차 승객들이 전부 저를 쳐다보고 있었겠지만 ,..쪽팔려서 @,@
암튼 밖에서 열리더군요,,
하루에 한 번 있는 기차...
못 탔으면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땀이
우와~ 다행이예요...
특히나 아이한테는 정말 다행이네여...
아마 아이두 속으로 엄마아빠한테 미안해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주스를 먹고싶다고 하지 않았다면 탈수도 있었을지 모르니깐요~ 아이들이 어린거 같아도 다 생각을 할줄 알더라구요~
다행이도 열차를 탔으니 아이한테 정말 다행인거 같습니다. ^^;;
글을 읽다보니 저두 예전에 기차타고 가다가 한 아주머니가 KTX 에서 일반열차로 환승을 잘못해서 애먹다가 친절한 열차승무원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었던 한분이 생각나네요~ ^^;;
느긋하신 분같네요
저같으면 5분전에 출발한다는 생각은
못할텐데
님의 여유가 좀 부럽다는 느낌은 웬일일까.
작년이던가.. 서울에서 고향갈려고 한손에는 무거운 캐리어를 한손에는 다른 가방을 들고 10분전에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날도 명절연휴전이라 정말 엄청 밀리더군요. 표는 미리 예약해두었기에 별 걱정이 없이 10분전에 갔지만... 정말 표를 받는게 전쟁이더군요. 7분 기다리고 사정설명하고 먼저 표받아서 정말 평생 그렇게 힘 써본적이 없는 정도로 뛰었습니다. 캐리어 못해도 15kg정도.. 가방도 꽤 나갔는데 한손에 두개들고 막 달렸다지요. 직원분이 차 표 확인도 안하고 말입니다. 마치 마라톤할때 길가에 드문드문 서있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들으면 뛰듯이 막 뛰었더랩니다. 사람들 다 쳐다보고... 겨우 들어가서 앉았을때 피로감과 함께.... 이상하게도 성취감이 -_-;. '역시 난' 으음~!
고마운분이네요. 다행입니다.
kalmia // 출근시간 버스 놓쳐보신적은 없으시죠?
이야..애까지 딸리신 분이 5분전에도 기차(그것도 KTX!)에 탑승 안하시고 여유를 부리시다니 정말 강심장이시네요!
저는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좀 늦게 가려해도
가보면 꼭 30분 이상 기다리게되죠...
글쓴분 과는 어떤 유전자의 차이가 있나봐여
철도공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그 친절한 직원에게 직,간접적인 보탬이 됩니다
님이 받은 친절을 보답해보심은 어떤지...
저도..
기본 20분은 먼저 기차 기다리는데..음..
KTX탈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승무원들 매우 친절하지요..
승무원들은 고향에 다녀오지도 못했을텐데..
철도청 홈피에 친절칭찬글 하나 남기시면 어떨까요?^^
간만에 훈훈한 글에 흔적 하나 남기고 갑니다~
몇 분의 제안대로 코레일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감사의 글을 올렸습니다. 칭찬 좀 많이 해드리라고요. ^^
그래도 옆에 다른 kTx가 있었으니 다행이군요! 그것마저 없었으면.. 새마을이나 무궁화 열차였으면 뒷차로 몇시간후에 만나려면 얼마나 속상하고 아찔했을까!
요즘 친정한 공무원 또는 공사직원들 엄청 많아요.고객을 섬기는 곳일수록 더 그렇지요. 어쨌거나 무사히 귀경해서 다행입니다. 시간여유가 있을수록 긴장해야겠군요.
비밀댓글 입니다
너무 재밌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