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태국 방콕·파타야.

 버스는 덜컹거리며 파타야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오후 6시가 채 안 됐지만 창밖엔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다. 네 살배기 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팔에 안겨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사흘째 방콕의 수완나폼, 돈므엉 두 국제공항을 점거하는 바람에 출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파타야 인근 우타파오 군용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태국 정부가 이날 외국인 관광객 출국을 돕기 위해 방콕에서 약 200㎞ 떨어진 군용 비행장을 개방했다. 다행히도 한국의 대한항공이 태국에 발이 묶인 한국인 관광객의 귀국을 위해 특별기편을 편성해 급파했다.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한국에 돌아갈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태국 우타파오 군용 비행장에 들어가기 위해 짐을 끌고가는 여행객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우타파오 공항 터미널 입구.

 방콕에서부터 거의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타파오 군용 공항은 난민촌과 다름없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가득 태운 버스와 차량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타파오 군용 비행장은 소요사태와 상관없는 파타야 인근이었지만 긴장감은 더했다. 비행장 정문부터 무장군인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군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검문했다.

 오후 6시, 버스에서 내렸을 때 공항 청사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곳에 모인 관광객 가운데는 가족단위로 단체관광에 나선 한국인을 비롯해, 차도르를 머리에 두른 중동여성, 자유분방해 보이는 유럽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조그만 시골학교만한 여객터미널은 모여든 사람에 비해 턱없이 비좁았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주차장과 잔디밭으로까지 쏟아져 나와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청나게 모여든 인파에 우리 일행을 인솔한 현지 가이드 얼굴에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행들을 청사 바깥 주차장 한쪽에 모아 세운 가이드가 말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제가 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각국 관광객이 한꺼번에 볼려들어 번잡한 터미널 입구.


 
 10분쯤 뒤 돌아온 가이드가 터미널 안으로 안내했다. 입구엔 경찰과 군인이 지키고 서 있었다. 건물 안에는 끝이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줄이 몇 개 형성돼 있었다. 대부분 승객은 일단 줄 끝에 붙어 섰다. 일단 줄에 낀 다음 앞사람에게 “뭐 하는 줄이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줄은 크게 세 종류였다. 탑승권을 받는 줄, 소화물 보안 검색을 받기 위한 X레이 검색대 차례를 기다리는 줄, 마지막으로 탑승장 출국심사 대기 줄이었다.


우타파오 공항 터미널 출국장 입구에서 출국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관광객들.

터미널 내 X레이에서 보안검색 차례를 기다리는 승객들. 어디가 줄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탑승권 발권과 소화물 발송 수속은 항공사별로 잔디밭에 놓인 탁자에서 이뤄졌다. 모든 게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덩그러니 놓인 항공사 수속 책상엔 컴퓨터조차 한 대 없었다. 비행기표의 좌석배정도 일일이 손으로 했고, 탑승권 기재사항은 모두 삐뚤 빼뚤 볼펜으로 적어 넣었다. 소화물 탁송 태그까지 손으로 써서 붙였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질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잠시 딴 곳을 쳐다보고 있으면 금세 앞사람이 바뀌었다. 새치기 때문이었다.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저씨, 줄 좀 서세요. 왜 새치기를 하세요.”
 “누가 새치기를 했다고 그래요. 원래 여기 있었어요. 잠깐 화장실에 갔다왔어요.”

볼펜으로 쓴 비행기 탑승권.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다.


  
 아침부터 태국 곳곳에서 몰려든 1만여 명의 관광객은 터미널 안팎을 이미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의자 위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화장실엔 악취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리 쏠리고 저리 밀렸다. 찜통처럼 데워진 청사 안에서 피곤과 짜증이 극에 달했다. 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어린아이들은 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다. 노약자들에게는 점차 견디기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동양인 청년이 이런 장면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사진기를 든 폼이나 배낭을 멘 행색이 기자 같아 보여 말을 걸었다.
 “기자입니까?”
 “아니오. 저도 관광객입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에서요. 그쪽은요?”
 “저는 태국인입니다. 저도 방콕과 파타야에 관광을 왔어요.”
 “그런데 뭘 그렇게 열심히 찍습니까?”
 “고향 친구들에게 여기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힘드시죠? 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태국인 품쏘파 나(27)는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르며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관광대국 태국 시민으로서 현재 상황이 많이 걱정되는 듯 보였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울러 짐을 챙기는 관광객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현지 가이드의 모습도 하나 둘 사라졌다. 뒤섞인 손님들을 통제할 길도 없었고, 이런 난리통에 가이드라고 해도 달리 도와줄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승객도 이를 알았다. 이제 모든 수속은 승객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1000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모든 짐을 이고 진 채 혼돈의 태국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대한항공이 급파한 특별기는 오후 10시40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까지 소화물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보안체크를 위해 공항 내 단 하나 설치된 X레이 검색기 주변은 수천 명이 동시에 몰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X레이 검색대 앞에 서 있는 줄은 한 시간째 1m도 줄어들지 않았다. 중간 중간 계속 사람들이 끼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줄도 세 겹 네 겹으로 만들어져 어디가 줄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무작정 검색대 쪽을 향해 서 있는 것이 줄이라면 줄이었다. 새치기 다툼이 곳곳에서 불거졌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얼굴을 붉혔다. 신체 접촉을 싫어하는 일부 서양인들은 약간만 건드려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상대가 아시아인일 경우 더 그랬다.

 “헤이! 좀 조심해요. 내 가방을 건들지 말란 말이에요.”
 “이렇게 비좁은데 어떻게 합니까. 서로 이해해야지.”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경찰!. 저쪽에 새치기하는 사람 좀 막아요. 우린 아까부터 줄 서 있는데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잖아요.”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제각기 불평을 쏟아냈다.

우타파오 공항 터미널을 가득 메운 외국인 관광객들.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일부 국가의 구호 노력은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급파한 것으로 보이는 호주관관경찰(ATP)은 자국민을 보호를 위해 동분서주했다(태국 교민이라는 분이 이 사람은 호주 출신 태국관광경찰이라고 알려 왔다). 일부 경찰은 공항청사 입구에서 승객들을 통제했고, 또 다른 일부는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나무랐다. 오스트리아 항공사는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자기네 승객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터미널에서 가장 널찍한 레스토랑 공간을 확보해 두고 승객들을 위해 비상식량을 제공했다. 레스토랑 안에 편하게 앉아 창밖의 북새통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한국 정부 관계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국인 승객 가운데는 임신부와 어린이, 심한 복통환자까지 있었지만,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한국인 승객끼리 가방을 털어 물과 음식을 먹이고 과일을 나눠줄 뿐이었다. 일부 한국인은 오스트리아 항공사로부터 비상식량을 얻어 와 나눠 먹기도 했다.
 앞에 섰던 한 관광객이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나라는 경찰까지 보내 자국민을 보호하는데 한국 정부는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국인이 1000여 명이나 이렇게 외국 공항에 발이 묶여 있는 데 대사관 직원을 찾아보기도 힘들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확성기를 든 태국의 호주관광경찰이 질서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가 가장 미안한 것은 딸 아이였다. 벌써 예닐곱 시간을 이 같은 난리법석 속에 버티고 있었다. 잠이 든 채 아빠 팔과 엄마 등을 오가길 수차례. 간간이 덥다고 투정하던 아이는 새벽 한시가 넘어가자 축 늘어졌다. 잠든 얼굴엔 고통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입을 떼지도 못했다. 못 먹고 못 쉰 탓이었다. 아내도 힘들어 하며 자꾸만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슴에 안은 딸 아이의 머리카락이 땀에 절은 내 얼굴에 눌어붙었다. 힘들게 낸 휴가가 이렇게 끝이 나게 돼 너무 미안했다.

 이래저래 한국인 탐승객들이 출국심사까지 마친 것은 새벽 3시였다. 출국장 유리창 너머로 이륙 준비를 마친 대항항공 비행기가 보였다. 환하게 불을 밝힌 객실은 너무도 아늑해 보였다.
 ‘이제 저기에 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50평 남짓한 출국 대기장에서 또다시 밀고 당기기가 한 시간. 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외국인들 입에선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출국장에서 활주로로 통하는 출구에선 공항 직원과 승객 사이에 몸싸움도 벌어졌다. 더위에 지친 승객들이 문이라도 활짝 열어달라고 했지만, 직원들은 “그러면 질서유지가 안 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마침내 탑승장 유리창에 인천행 탑승을 알리는 종이 한 장이 내걸렸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 전광판 따위는 없었다. A4용지에 싸인팬으로 괴발개발 행선지와 편명을 쓴 게 전부였다. 그래도 감사했다. 한국인들 입에선 안도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비행기를 놓칠세라 서로에게 소리를 질렀다.
“대한항공 인천행 KE8652편 탑승! 8652 탑승! 한국인들은 앞쪽으로 나오세요.!”

 시원한 바깥공기를 마시며 마침내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트랩 끝엔 아름다운 쪽빛 유니폼을 입은 스튜어디스가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시계 바늘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공항에 온 지 꼬박 10시간 만의 출국이었다.

우타파오 군용 비행장 활주로에 각국에서 급파한 비행기들이 대기하고 있다.





파타야로 이동하는 버스 안 아빠 무릎에서 장난치는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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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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