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미국 하와이.
한국 언론재단과 미국 동서센터(EWC)가 주관한 ‘한미언론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3주일간 진행된 이 행사의 마지막 일정은 하와이대학 EWC 건물에서 이뤄진 결산 토론회였다. 2박3일 동안 세미나를 통해 미국 기자들은 한국을 돌며 보고 느낀 것을, 한국 기자들은 미국에서의 경험을 서로 나누는 자리였다. 본격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날 오후, 하와이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해변에 자리잡은 한 식당에서 양국 기자들 간 첫만남이 이뤄졌다.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 전 서로 친해질 시간을 가져보라는 주최 측의 배려였다.
미국 CBS기자와 함께 바람을 맞으며 장난스러운 표정.
초저녁, 하와이 특유의 노랫소리가 식당 전체에 흥겹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몇몇 관광객이 밴드 음악에 맞춰 어설픈 훌라춤을 추었다. 바닷가 모래사장 바로 위 테라스에 마련된 된 긴 테이블에 한·미 기자가 각각 7명씩 마주 앉았다. 이날 만찬의 ‘공식 언어’는, 물론 영어였다.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동시통역사가 한 명 배석했지만 7쌍의 대화를 모두 통역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짧지만 용감한’ 영어 실력으로 각자 미국 기자들을 상대했다. 건너편엔 AP통신과 CBS방송, 볼티모어선 등 신문과 방송 언론인이 앉아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 그것도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기자들과 마주 대하니 말문은 얼어붙었다.
내 맞은 편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성이 앉았다. 미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세스인 것 같기도 한 외모였다. 이름이 ‘미아’라고 밝힌 그녀는 미 CBS방송국 뉴스 프로듀서였다. 한국에서 경주와 서울, 부산 등을 둘러보고 삼성전자와 포스코와 같은 기업도 방문했다고 했다. MBC 방송국에서는 ‘Infinitive Challenge’ 제작 현장을 견학했다고 자랑했다. 그녀는 몇 번이고 Infinitive Challenge를 아느냐고 물었다. 인피니티브 챌린지? 이 생소한 영어이름의 프로그램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던 ‘무한도전’이었다. 나도 미국에서의 이런저런 경험을 늘어놨다. 워싱턴, 뉴욕, 피츠버그 등을 가본 적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도 방문해 본 곳은 아는 체를 했다.
아름다운 하와이 전경.
둘의 대화는 그리 오래가질 않았다. 난생 처음 만난 데다 공통점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이거 뭐, 소개팅도 아니고.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불편함은 둘 사이의 대화 시간을 더욱 짧게 만들었다. 금세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같은 화제를 던져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지독하게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 주문한 음식은 왜 그리도 안 나오던지…. 대화는 결국 ‘일’ 얘기로 흘렀다.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취재 소재 가운데 서로 공감할 만한 것을 찾아내 이것저것 늘어놨다. 미아는 내 얘기 가운데 중동분쟁 취재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을 끝냈을 때였다.
“오! 그래요? 어땠나요? 어디 어디 둘러 봤죠? 누구를 만났나요?”
미아가 이것 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특유의 낮고 잔잔한 톤의 목소리를 유지한 채 질문을 던졌다. 내친 김에 나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났다고 자랑했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그래요?”
고양이처럼 ‘쿨’한 그녀의 관심을 사로 잡는데 성공한 나는, 직접 방문한 팔레스타인 난민촌 얘기며, 아라파트를 인터뷰한 뒷얘기, 이스라엘이 테러를 막기 위해 설치 중인 분리장벽 현장 등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다. 한참 동안 흥미롭게 얘기를 듣고 있던 그녀가 또 물었다.
“이스라엘은 어땠어요?”
“이스라엘이요? 글쎄요. 나는 이스라엘이 별로 안 좋더라고요.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을 많이 죽이잖아요. 분리장벽을 쌓아 팔레스타인 주민을 고립시키고 아이들에게까지 총구를 겨누잖아요. 나는 팔레스타인 편입니다.”
사실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서는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이다. 중동 분쟁현장을 직접 취재한 뒤에는 더욱 그렇게 됐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로켓 공격과 테러를 막는다며 이스라엘이 과잉대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테러에 단 하루도 맘 편할 날 없는 이스라엘인의 고통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시작이야 어쨌든, 현재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모두 해법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기는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날 나는 친 팔레스타인, 반 이스라엘 입장이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미사일 기지를 파괴한다며 레바논 남부에서 전쟁을 치른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에 수 천명의 팔레스타인·레바논 주민이 숨져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얘기를 하다보니 더 큰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의 편에 서게 됐다. 미묘한 어감을 살리지 못하고 모 아니면 도식으로 말하는 내 짧은 영어 실력 탓이기도 했다. 나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보고 들은 참혹한 현실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난했다.
하와이 해변
“이스라엘은 무고한 민간인을 너무 많이 죽이고 있어요. 레바논 전쟁 때도 그랬고, 가자지구에서도 그랬고. 시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공격하잖아요. 이스라엘 공격이 지나칩니다. 분리장벽은 또 뭡니까.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냐고요?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 등 이스라엘은 공격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기까지 끝내고 미아의 반응을 살피는데, 왠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내 얘기를 듣는 그녀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표정도 말투도 몸짓도 아까 그대로였지만 알 수 없는 어색함이 감지됐다. 뭔가 이상했다.
‘뭐지? 미아의 저 표정은 왜 그래?’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유대인인가?’
말 없이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미아에게 물었다.
“혹시… 유대인 아니죠?”
아니길 바랐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아임 쥬이시(I‘m Jewish).”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미국에 사는 유대계 인구(약 600만명)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수(약 550만명) 보다 많다더니…. 그녀가 바로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나는 팔레스타인이 약자니까 그들 편에 있다고 말한 거였어요. 마음 상하지 않았죠?”
“그럼요. 누구나 다 자기 입장이 있는 거니까요.”
말은 너그럽게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저기 멀리 바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이스라엘을 욕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갑자기 하던 욕을 멈추기도 그랬다. 차라리 그녀가 유대인이 뭐 어떻게 했다고 그러냐고 싸움이라도 걸어왔으면 자리가 편할 것 같았다. 그런 건 없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남은 식사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철썩!”
우리가 앉아 있는 식당 바로 옆 10m 떨어진 해변에서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선글라스에 힘겹게 의지해 어색한 눈빛과 표정을 감췄다. 나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다. 다행히도 옆에 앉았던 일행들이 우리를 구해줬다. 식사를 마치고 하나둘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서로 기념 사진이나 찍자며 분위기도 밝아졌다. 나도 얼른 그 틈에 끼었다. 미아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 미아(오른쪽 두번째) 앞에서 이스라엘 욕을 한참 동안 한 직후 찍은 기념사진. 왼쪽 끝이 나.
하와이 일정 내내 미아(오른쪽 두번째)와 나(맨 왼쪽)는 가까이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미아와는 2박3일 동안 세미나실과 식당 등에서 계속 마주쳤다. 매번 우리는 쿨하게 인사를 건냈지만 마음 속엔 어색함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유대인이었고 나는 이스라엘을 욕했다. 욕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서운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귓속엔 그녀의 한마디가 메아리쳤다.
“아임 쥬이시. 아임 쥬이시.”
그녀는 미혼이었고, 나이는 38살이었다.
마지막날 해변에서 쫑파티. 뒷줄 왼쪽 끝이 나, 아랫줄 오른쪽 두번째가 미아.
쫑파티하며 기념 촬영. 어색한 미아 바로 뒤에 서서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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