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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3 달랑 대포 하나로 왕국을 지킨다고? (2)
  2. 2008/07/02 장수마을 훈자 민가 체험 (2)


2007년 3월. 파키스탄 훈자(카리마바드).

 훈자 마을 뒤편 산 쪽 우러러 보이는 곳에 하얀색 성이 하나 있다. 훈자마을 가장 높은 곳, 가장 깊은 곳에 발티트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계곡에 맞닿아 우뚝 선 모습이 경외감을 자아냈다. 평평하고 높은 벽면 꼭대기에 불쑥 튀어나온 방 두 개를 기다란 나무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구조는, 마치 백성들이 왕실을 떠받드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이 된 벽은 ‘떠받드는’ 기둥을 더욱 부각시켰다.

훈자마을에서 본 발티트성.

 가이드 아미르를 따라 발티트성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장엄하지 않았지만 정갈한 모습이었다. 성벽을 따라 가파른 언덕이 촘촘한 돌담길 옆으로 쭉 연결돼 있었다. 성문에 다다른 아미르가 안내소로 보이는 곳을 들어갔다. 아미르는 파키스탄 전통 의상을 입은 한 노인을 데리고 나왔다. 발티트성 관리인이었다. 원래 아는 사이였던지 서로 반가운 체를 해댔다. 아미르가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켰다. 나를 소개하는 모양이었다. 파키스탄 우르두어로 대화가 오갔지만, 이번에도 한마디는 알아들었다.
 “……아라파트!”
 아미르가 또 ‘아라파트‘ 얘기를 꺼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난 사실이 파키스탄 주민에게 대단하게 받아들여지는 건지, 아미르만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미르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아라파트를 만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번에도 효과는 있었다. 발티트성 관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반갑게 악수를 청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후르 샤입니다. 이곳 관리인이죠. 아라파트를 만나셨다고요.”
 “아, 예….”
 “큰 일 하셨네요. 자 따라오시죠. 네가 훈자 왕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샤는 성큼성큼 언덕길을 올랐다. 한걸음 뒤에 따라오던 아미르를 돌아봤다. 아미르가 나를 보더니 찡긋 윙크를 한 번 했다. 한마디로 ‘아라파트가 먹어준다’는 표정이었다. 현지 물정은 현지인이 가장 잘 아는 법. 나는 아미르가 하는 대로 그냥 나뒀다.
 

발티트성 외벽에 나무기둥들이 새로 지어진 별실들을 아슬아슬하게 떠받치고 있다.


 발티트성 내부는 어둡고 복잡했다. 미로처럼 엮인 복도와 통로가 이리저리 뻗어 있고 층층이 복잡하게 겹쳐 있었다. 각층은 뚜렷이 구별되지 않아서 바닥이 층간에 겹쳐 있는 곳도 있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는 문턱도 제각각 다르고, 방방마다 모양과 양식도 달랐다. 채광이 잘되는 방이 있는가 하면, 창문이 작아 답답한 방도 있었다. 환풍 시설은 몽골의 양식, 반지하로 된 감옥은 서양의 것을 모방한 것처럼 보였다. 
 ‘이게 훈자 스타일인가? 주민들도 동서양이 만난 혼혈인이 많더니, 건축도 그런건가? 그래도 왕궁이었다는데 왜 이렇게 뒤죽박죽 지었을까?’
 관광객들의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었다. 오래도록 관광객을 상대한 샤가 내 표정을 읽고는 대번에 설명을 늘어놨다.
 “발티트성은 약 700년 전에 지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층으로 만들어졌는데, 차차 2층, 3층으로 규모를 키웠습니다. 게다가 훈자 왕들이 이웃나라 공주들을 왕비로 맞아들이면서 그들의 취미대로 성을 조금씩 손봤습니다. 그 때문에 다양한 문화양식이 표현돼 있습니다. 특히 티베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설명을 듣고 보니 중국 시짱(西藏) 자치구에 있는 티베트 포탈라궁하고도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전면 전체를 하얗게 칠한 것이며 비탈지게 올라가는 입구, 조그맣게 난 창들이 흡사 포탈라궁 축소모형 같았다.

훈자왕의 침실 내부



발티트성 내부. 화로가 있는 방



부엌

 

발티트성 내 반지하 감옥의 모습. 어둡고 음산한다.



19세기 훈자왕국을 침공한 영국군도 발티트성에 영향을 미쳤는데, 3층에 자리 잡은 발코니와 방들이 그때 개조된 것이라고 했다. 영국인들이 개조했다는 3층에 올라왔다. 더 이상 샤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왜 발티트성이 이곳에 자리 잡았는지, 영국인들이 왜 3층에 손을 댔는지 설명 없이도 알 수 있었다.
 발티트성 3층 발코니에서는 훈자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훈자 계곡이며 발아래 자리 잡은 훈자 마을, 발티트성 뒷산 정경까지 빠짐없이 들어왔다. 옛날 훈자 왕들은 이곳에 올라 백성들의 삶을 지켜 보았을 것이고 그들의 걱정을 들어주었을 것이었다. 사랑하는 백성들을 어떻게 하면 배를 불리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지, 하늘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고민했을 것이었다.



발티트성 3층 발코니에서 본 훈자 밸리 전경. 아래 쪽에 훈자 마을과 운동장이 보인다.

 나는 훈자의 왕이라도 된 양, 난간에 단단히 몸을 기대 훈자 마을을 곳곳을 살폈다. 가슴 깊이 시원한 공기도 들이마시며 왕의 정취를 만끽했다.
 ‘이처럼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이라면 왕 노릇도 할만 하겠군.’
 그때 아미르가 끼어들었다.
 “멋있죠?”
 “네. 정말 멋집니다. 카슈미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네요.”
 자신들의 문화유산이 자랑스럽다는 듯 아미르가 덧붙였다.
 “작년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바로 그 자리에서 훈자 절경을 감상했죠.”
 “찰스 왕세자가 훈자에 왔었어요?” 
 “네. 두 번째 부인 카밀라와 함께요.”
 “왜 왔죠? 그냥 재미삼아 왔나요(for fun)?”
 아미르 대답이 걸작이었다.
 “For fuck(재미보러 왔죠).”
  1초 동안 어색한 침묵. 잘못 들었나? For fuck? 하지만 바로 뒤 큰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우하하하!” “for fuck!” 
  아미르도 나도 파안대소를 했다. 그동안 문화재 관리인으로 근엄한 표정을 지어왔던 샤도 참지 못했다. 하하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for fuck’이란 말을 몇 번이나 되뇌며 눈물나도록 웃었다. 사실 아미르와 나는 지난 사흘을 같이 지냈지만, 아직은 그렇게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여행객과 가이드로서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하지만 가이드의 이 한 마디는 우리 사이를 친구로 만들어 버렸다.
 

발티트성에서 본 훈자 마을. 아래쪽 언덕 끝부분에 보이는 하얀색 큰 건물이 현재 훈자왕의 새로운 거처라고 한다.


 훈자왕은 현재 발티트성에 없다. 왕은 1945년 발티트성을 떠나 마을에 더 가까운 알티트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후로 발티트성은 버려져 있었지만, 1990년대 들어 대대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발티트 헤리티지 펀드(BHF) 등 국내외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1996년 복구작업을 마친 발티트성은 1996년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그때의 복원작업이 성공적이었는지, 발티트성은 2005년 타임지에 의해 아시아의 최고 유물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며, 200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재 보존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찰스 왕세자가 이 험한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이곳을 방문했을 정도니 그 문화재적 가치나 주변 자연 경관은 세계적인 자랑거리라 할만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방문객 수가 크게 줄었다. 계속된 인도·파키스탄 국경분쟁과 파키스탄 북서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관광객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한때 국내외에서 최고 인기 관광지로 꼽히던 카슈미르의 관광산업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샤는 “한 해 8만 명에 이르던 외국인 방문자 수가 9·11테러 이후 수백 명대로 줄었어요”라며 심각성을 말했다.

발티트성의 뒷면 성벽.

 발티트성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샤가 또 한 번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훈자 왕조는 그동안 많은 외침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비록 상징적인 왕이지만 훈자 주민들은 여전히 그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있죠.”
 일행이 다시 처음 출발했던 성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훈자 계곡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는 대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대포 뒤편에 서서 어디를 겨누고 있나 살펴봤다. 저 멀리 훈자마을 입구쯤에 조준 된 것 같았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음이 느껴졌다. 뒤에 섰던 샤가 한마디 거들었다.
 “훈자 왕국을 지키기 위한 대포죠.”
 “아 그렇군요. 그런데…, 대포가 달랑 하나입니까?”
 “예? 예. 하나예요.”
 “훈자 왕국을 지키는 대포가 달랑 이거 하나예요?”
 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 자신도 이제껏 발티트성과 그 대포에 대해 자랑해 왔지만, 정작 성을 지키는 대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처음 인지한 것 같았다. 왕궁을 지키는 대포가 달랑 하나라니! 생각해보니 그도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모두 허리를 꺾어가며 웃어댔다. 이번엔 “only one(달랑 하나), only one”이었다.
 나중에 따로 알고 보니, 발티트와 훈자를 무장해제한 것은 영국군이었다. 훈자 마을에는 원래 망루 대와 요새처럼 만들어진 성벽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891년 영국군이 왕국을 접수하면서 모두 파괴해 버렸다. 발티트성에도 감시탑과 요새 시설이 갖춰져 있었지만 이때 영국군에 의해 부숴졌다.

 발티트성 아래 크리켓을 하는 청년들의 소리가 왁자했다. 장비라고는 뭉툭해진 나무 배트와 시커멓게 손때가 낀 가죽공이 다였지만, 여남은 명의 청년들이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와’ 하는 함성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대단한 플레이라도 나온 모양이었다. 누군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왕에게 인사를 한 것인지, 구경꾼인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왕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그냥 행복했다. 많은 욕심도 없었고, 작은 것에도 감사했다. 훈자 마을 오후의 한 장면은 그랬다.

발티트성 아랫마을 주민들.


훈자마을 주민이 우리 일행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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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카리스턱 2009/01/23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으로 보니 역시나 구름이 많군요 그동네 날씨는 여전하네요
    제작년 봄이 다가올즘에 갔었는데 그당시에도 눈과 함께 길이 묻혀서 길이 뚫릴때까지 기다리곤했는데 소코님 사진을 보니 묵혀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부러움에 배가아프네요

    코쇼상의 저녁과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서 본듯한 동네주민들, 살구꽃...

    아 배아퍼요!!! 건강하게 여행하세요~

    ps : 찰스왕과 대포 재미있었습니다 ㅋㅋㅋㅋ

  2. BlogIcon soko 2009/01/23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훈자, 좀처럼 가기 힘들지만 정말 좋은 곳이죠. 저랑 추억을 공감하시는 분이 있다니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2007년 4월. 파키스탄 훈자 장수마을.

 세계적인 장수마을 훈자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이 만나는 카슈미르 계곡에 숨어 있다. 좌우에 늘어서서 훈자를 내려다보는 산봉우리들은 대부분 해발 6000m가 넘는다. 계곡을 메운 빙하는 세월조차 얼린 듯 새하얗게 멈춰섰다. 만년설 끝자락이 녹아내려 만든 옥색 강물은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흐른다.

훈자계곡에 자리한 마을. 벚꽃이 막 피려고 분홍색이 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티트 성에서 내려다 본 훈자 마을 전경



끝없이 이어지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살구꽃과 벚꽃이 만개한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소개한 '도원경(桃源境)'이 바로 훈자라고 한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 훈자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원래는 2∼3일 걸리는 거리지만 취재일정 때문에 가이드를 다그쳐 강행군을 했다. 현지 가이드는 “내 평생 이렇게 급한 스케줄로 훈자에 오긴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훈자의 중심도시 카리마바드. 이곳이 소위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높은 산 빙하가 한껏 머금었다 토해내는 공기가 상쾌하게 가슴 속 깊이 파고 든다. 맑은 시냇물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마을 곳곳의 오르막길은 몇걸음만 옮겨도 숨이 턱까지 차 오르게 만든다. 훈자마을이 워낙 고산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약한 정도의 고산병이라고 할까. 가이드 말에 따르면 카리마바드는 해발 2500m 이상 고지대여서 외지인은 흔히 이런 경험을 한다.

 훈자 마을은 아담하다. 집들은 흰 벽이 깨끗하고 신작로는 잘 관리돼 있다. 집집마다 돌담을 예쁘게 쌓아올려 마을 구석구석 이어진 돌담길이 정겹다. 산과 마을,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의 동방 정벌 때 이곳을 지나던 병사들 일부도 이 풍광에 반해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훈자 주민 가운데는 파란 눈, 금발이 많다.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닌 이들의 모습은 신비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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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훈자에는 거지가 없다. 모든 주민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훈자에서는 대대로 부모들이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토지를 나눠줘 경작하게 한다. 놀고먹는 사람이 없으니 범죄율도 낮다. 살기 좋은 곳엔 오래 사는 사람도 많은 법. 와지드 울라백 훈자 촌장에 따르면 훈자 지역 전체인구 약 6만5000명 가운데 100세 이상 주민은 150여 명에 달한다. 카리마바드는 주민 1만5000명 중 20여 명이 100세 이상이다.

 훈자 주민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 이들은 기력이 닿을 때까지 일하는 것을 최고의 장수 비결로 꼽는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91세의 클비 알리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목수 일을 했다고 했다. 그는 80세가 돼서야 은퇴했다. 이후 스스로 ‘천직'이라고 여기는 농업에 종사하면서 요즘도 하루 3∼4시간씩 밭에 나가 일을 한다. 91세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힘이 넘쳐 보였다.

장수 비결을 묻자 알리 할아버지는 손사래부터 친다.

 "내 나이는 많은 것도 아닌데 무슨 장수비결이야. 그냥 많이 걷고 열심히 일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어. 나는 젊었을 때 하루 15㎞ 정도를 예사로 걸어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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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쿠시 산맥의 험산준령 아래 자리잡은 훈자마을 밭에서 일하는 글루아팅 할아버지. 그는 이날 즉석에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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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세 노인과 며느리, 손자. 이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정도로 기력이 좋았다.>



 훈자의 장수 비결을 얘기할 때 노동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게 음식이다. 훈자인은 통밀가루로 만든 빵 '차파티'와 감자, 치즈, 야채, 과일 등을 주식으로 한다. 특히 살구를 좋아하는데 마을 어디를 가나 살구나무가 있다. 훈자인들은 살구를 말려 1년 내내 간식으로 먹고, 살구씨에서 기름을 짜 몸에 바르기도 한다. 고기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밭에서 만난 알람기르 글루아팅 할아버지가 즉석에서 집으로 초대하는 바람에 훈자의 ‘가정식 백반’을 체험할 수 있었다. 64세로 이 동네에선 ‘젊은 축’에 더는 글루아팅 할아버지는 20평 남짓한 집에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는 환기 구멍이 뚫려 있고 바닥엔 카펫이 깔려 있었다. 카펫은 색은 좀 바랬지만 파키스탄제 답게 문양이 몹시 화려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부지런히 음식을 내왔다. 말린 살구와 사과, 차파티, 이름 모를 음식들 십여 가지가 금세 쌓였다. 며느리가 홍차 처럼 보이는 훈자 전통 차를 권했다.


 글루아팅 할아버지는 어느새 정장(?)를 차려입고 앉아 있었다. 세탁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하얀 망토를 점잖게 어깨에 두르고는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양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손자 세 명이 연방 할아버지 무릎을 오르내리며 재롱을 피웠다. 글루아팅 할아버지는 차려진 음식을 가리키며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먼지가 앉은 살구와 말라 비틀어진 사과는 그다지 먹음직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비위생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게 장수 비결이라니….’ 가장 큰 놈을 집어들고 한 입 덥석 베어 물었다. 몸에 좋은 것은 쓰다고 했던가. 훈자 살구는 쓰진 않았지만 기대했던 단맛도 없었다. 그래도 인사치레도 “맛있다”고 몇 번을 얘기해 주었다. 글루아팅 노인은 자신들의 음식에 대한 이방인의 평가가 만족스러운 듯 “이것저것 더 먹어 보라”며 음식 접시들을 모두 내 앞으로 밀어 주었다.



 정확히 훈자 음식의 무엇이 이들을 건강하게 만드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훈자 식단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는 나와 있다. 오래전 인도국립영양연구소의 마카리손 박사가 생쥐 3000마리를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훈자·인도·영국 음식으로 사육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실시 2년 뒤 차파티와 살구, 양배추 등 훈자식으로 사육한 쥐 그룹에서는 질병이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쌀과 향신료, 육류를 섭취한 인도 그룹에서는 표본의 절반이 충치와 간염 등에 시달렸고, 흰빵과 햄 등으로 사육한 영국 그룹 쥐는 거의 모두 질병이 발견됐다고 한다.

  훈자인은 자기들만의 것을 지키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지키고 있다. 그 어떤 약이나 첨단 의료기술보다 자신들의 생활습관 속에 장수의 비결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평균수명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모두 외부 영향 탓이라고 말한다. 외지에서 들여온 음식과 문화가 훈자인의 식생활 등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식수로 이용하는 훈자 강물은 석회질 등 빙하에서 떠내려온 불순물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조상이 그대로 마셨고, 그러고도 장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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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 여성들이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기르고 있다. 이 물은 훈자 마을 뒤 울타피크의 빙하가 녹은 물로, 석회 성분 등 불순물이 포함돼 있어 타지역 주민이 마시면 탈이 나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훈자는 철저히 '그들만의 세계'다. 주민들은 외부 영향을 극도로 싫어한다. 심지어 결혼도 자기들끼리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근친혼으로 인한 장애인도 많이 생겨났다. 훈자인들은 이들을 정성껏 보살핀다. 남달리 왜소하거나 정신지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가 나온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 본 '불사(不死)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얘기다. 하지만 걸리버가 만난 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죽지는 않았지만 늙지도 않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는 사람들'은 늙어서 기력도 없고 사회적 역할도 없어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가족들에 의해 버려지는 사람도 있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만나기 싫은 나쁜 사람이라도 안 만날 수 없었고 끔찍한 범죄는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이들에게 영생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일 뿐이다.

'도원경' 훈자에선 얘기가 다르다. 훈자 주민들은 무엇이 진정 행복한 장수인지를 보여 준다.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일하다 때가 되면 운명을 받아들이니 그야말로 '지상천국' 아닌가.



훈자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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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부지깽이 2008/07/16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곳도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2. BlogIcon soko 2008/07/16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첫번째 댓글 달아주셨습니다. 아~ 눈물이...